이슬람 제국의 건설, 로마의 붕괴 같은 문명의 변화를 초래하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정치적 변동, 이웃 나라의 침입, 왕조의 붕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원인의 이면에는 인간 사고의 뿌리 깊은 변화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 변혁은 장엄하게 또는 격렬하게 진행되어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당시 사람들의 사상, 관념, 신념의 변화가 문명의 혁신을 가져오는 유일하고도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현재는 인류의 사상이 전환과정을 겪고 있는 중대한 순간이다. 전환의 근저에는 문명의 모든 요소가 뿌리박고 있는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신념이 파괴되는 순간이다. 동시에 현재의 과학적, 산업적 발견의 결과에 의해 경험해 보지 못한 생존 조건과 새로운 사상이 조성되는 조건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의 모든 신념이 서서히 사라지고, 사회의 낡은 기둥들이 하나씩 파괴되어 가지만, 군중의 힘은 누구도 대응할 상대가 없는 세력으로서 권위가 계속 커져서 가고 있다.
향후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군중의 시대가 될 것이다. 과거의 사상이 허물어져 가고 있으나 아직 매우 강력하게 남아 있고, 그 사상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사상은 형성 과정에 있기 때문에 현재는 과도기와 무정부 상태로 나타난다. 현재 사회를 계승할 새로운 사회의 토대가 될 기본적인 사상이 어떠한 내용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미래의 사회가 어떤 노선에 따라 구성되는가에 상관없이 그 사회는 하나의 새로운 세력,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현재의 지배 세력인 군중의 힘을 중시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필연적으로 얼마간 혼란스러울 이 시대가 미래에 어떻게 진화되어 갈 것인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이전 시대에 확고하였던 여러 가지 사상이 오늘날 쇠퇴하고 있으며 계속되는 혁명으로 수많은 권력이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 오직 군중만이 곧 다른 모든 세력을 흡수할 기세이다. 군중 계급이 정치 영역에 들어 온 사실은 군중 계급이 점차 지배 계급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며, 전환기의 가장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성적인 논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군중은 행동할 때는 매우 빠르다. 조직된 군중의 힘은 막강하다. 군중은 폭군처럼, 군주 같은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징후는 군중의 힘이 급속히 증대하고 있다. 군중의 성장이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운명을 가져오더라도 우리는 군중 세력에 순응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낡은 문명의 철저한 파괴는 군중의 가장 명백한 과업이었다. 비단 오늘날의 현상만은 아니다. 한 문명의 토대가 된 도덕적 힘이 약해지는 순간부터 그 문명의 최종 붕괴는 자각 없고 난폭한 군중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문명은 소수의 지적인 귀족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결코 군중에 의해서 지배된 적은 없다. 군중은 파괴에만 강하다. 문명은 확실한 법규와 규율, 본능적인 상태로부터 합리적인 상태로의 전환, 미래에 대한 예상, 고도의 문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군중의 법칙은 야만적인 측면이 있다. 군중의 독자적인 힘만으로 문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군중이 가지고 있는 힘이 오로지 파괴적인 특성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쇠퇴했거나 죽어가는 대상을 해체하는 역할만을 한다.
한 문명의 구조가 썩었을 때, 그 문명을 붕괴시키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군중이 맡아 왔다. 우리 문명도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까. 그럴 것이라고 염려할 만한 근거는 있지만, 이 단계에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의심할 여지 없이 범죄적 군중이 있다. 반면에 착한 군중, 영웅적인 군중, 다른 많은 부류의 군중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군중의 범죄는 군중 심리의 특수한 일면일 뿐이다.
세계의 모든 지배자, 종교나 제국의 창시자들, 모든 신앙의 시도들, 뛰어난 정치가들, 더 낮추어 군소 인간 집단의 지도자들은 항상 무의식적인 심리학자로서 군중의 특성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였다.
오늘날 군중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군중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군중에 의해 지나치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정치가들이 갖추어야 할 최후의 수단이 되었다.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고자 하는 입법자가 있다고 하면, 실제로 가장 공정하지 않은 조세가 군중에게 가장 좋은 조세가 될 수 있다.
만약 그 세금이 아주 분명하지 않은 성격을 띠고 있고, 겉보기에 가장 부담이 적어 보이면, 군중은 아주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 이유로 지나치게 세율이 높을지라도 간접세는 군중이 쉽게 받아들인다. 임금이나 다른 소득에 비례하여 일시불로 지급하는 부가세로 바꿀 경우, 이 새로운 과세가 이론적으로 간접세보다 열 배나 세금 액수가 적다 하더라도 납세자들은 누구나 항거할 것이다. 간접세는 매일 소비 물자에 얹혀서 조금씩 지급되기 때문에 군중에게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며 군중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순수하게 정당한 이론에 토대를 둔 법률을 가지고 군중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군중 심리에 어느 정도의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
'근현대사 주요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적 시간의 등장이란 무엇인가 (0) | 2024.04.17 |
---|---|
우리나라 근대 인구 변동의 추이 (0) | 2024.04.15 |
남북 적십자 회담의 전말 (0) | 2024.04.11 |
1960년대 북한의 대남정책 (0) | 2024.04.05 |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대북정책 (0) | 2024.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