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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주요 이슈

근대적 시간의 등장이란 무엇인가

by 영동신사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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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간 리듬에 따라 생활하였다. 농촌, 어촌, 산간 마을과 평지의 시간 리듬이 서로 달랐으며 상인과 농민의 시간 감각이 동일할 수 없었다. 공적인 시간은 사적인 시간 속으로 거의 침투하지 못했으며, 표준시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힘들었다. 정확한 시각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느슨하고 완만하며 분산적인 시간 리듬은 전국적, 전 세계적 표준시 체계에서 11초를 다투는 현대 사회의 일상생활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달랐다.

 

전근대 사회는 아직 시간이 사람들의 생활을 촘촘하게 지배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농경이나 유목 사회에서 사람들은 시간이 미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고 생각하였다. 순환적인 농경과 유목의 성격에 따라 시간 의식이 규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정착되었던 오일장도 순환적 시간관념과 연관될 수 있다. 순환적 시간 의식은 불교의 윤회사상과 어느 정도 부합하였고, 유교에서 말하는 극기복례와 통하였다. 인생이란 돌고 도는 것이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요순시대에 맞닿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현재가 과거와 다르지 않게 반복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농민들이 보수적이라는 점은 시간관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근대 시대의 시간관은 모든 시간이 동질적이라고 보는 근대적 시간관념과 달랐다.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 또한 이질적이었다. 전근대 인간은 동질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는 평등한 개인이 아니라 이질적인 시간에 의해 규정되는 불균등한 운명 속에 살아가는 존재였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시간 측정법, 근대적 시간관념은 서양의 역법과 시간 개념이 도입에서 시작되었다. 189611일부터 태양력이 채택되었다. 1주일 단위의 시간 리듬을 나타내는 7 요일제는 대한제국 관보에 1895년 음력 41일부터 나타나고 있다. 1890년대 중반의 독립신문에는 24시간제에 따른 기사도 보인다.

자본주의는 근대적 시간 의식과 시간 리듬을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자본주의적 노동 과정은 최대한의 생산성을 위해 고도로 정확한 시간 측정과 동작 관리를 추구했다. 식민지 시기에 이루어진 공업화는 노동자 계급의 양적 팽창을 불러와 1940년대 초반에는 노동자가 80만 명에 육박했다. 일제에 의해 징용 등으로 동원된 숫자는 60~150만 명에 달했다. 동원 노동자들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일제는 기숙사제를 통해 기상에서 취침까지 노동자의 하루 생활을 빈틈없이 통제했다.

 

모든 생활이 공장의 생산물 증산을 위해 계획되고 관리되었다. 노동 과정의 시간 관리는 노동자의 전체 삶 속으로 확장되었다. 근대적, 자본주의적 시간관의 다른 특징은 시간이 동질적으로 파악된다는 점이다. 좋은 시간, 나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시간으로 간주하며, 양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에서는 특정 노동 시간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시간을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절약은 돈의 절약이고, 시간의 낭비는 곧 돈을 낭비하는 일이었다.

 

이제 시간은 돈이 되었다. 시간을 돈으로 표시할 수 있게 된 것은 시계가 있어서 가능했다. 시계의 진정한 가치는 재료가 금이냐, 다이아몬드냐에 있지 않았다. 시계의 진정한 의미는 근대적 시간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시간은 금이라는 격언은 시계 산업으로 유명한 스위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시계가 멈추면 근대적 시간도 멈춘다. 시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가시화한 장치였다.

 

근대적 시계는 시간을 똑같이 나눌 수 있게 만들었다. 시간은 시계에 새겨진 숫자 사이의 거리로 표시되는 동질적 양이 되었다. 모든 자연적 리듬과 분리된 시간, 기계적 시간, 시계 시간을 만들었다. 시계에 의한 기계 시간은 이제 인간 노동의 분할과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제국 말과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기계 시계가 해시계 등의 자연 시계를 대체하였다. 그때까지 시계는 고가품에 속하였고 보통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 시기까지 시계는 모두 수입품이었다. 해방 후에도 주요 밀수품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시계 생산은 1959년 시계를 조립 판매하면서 시작되었다. 대략 1960~70년대를 통해 시계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근대적 시간은 전 세계를 단일한 시간으로 통합하였다. 이전까지 국가별, 지역별로 상이한 시간이 존재했으나 이제 전 세계가 동일한 시간, 표준시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간이 적용된 것은 철도의 확충, 신문과 라디오 등 매스컴의 발달에 근거하였다. 이제 각 지역의 시간은 기차 시간을 중심으로 통일되었으며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철도역의 시계는 공식적인 시간을 알려주는 상징이 되었다. 지금도 모든 주요 역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시계탑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적 시간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시간 리듬을 파괴하고 각 개인을 철저하게 권력의 시간 리듬 속으로 편입시켰다. 근대적 시간은 지식에 의해 과학적으로 조사, 분석되어 권력의 통제와 관리, 조작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지식과 권력의 통제, 관리, 지배는 우리에게 과학적 또는 효율적이라는 말로 다가오며 저항이 아니라 따르고 배우고 받아들여야 할 존재였다.

 

근대적 시간은 형벌로도 확장되었다. 근대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처벌 방식은 징역형이다. 일정한 시간 동안 인간을 특정하게 설비된 공간에 감금하는 것이 곤장, 태형 등의 신체형을 대신하였다.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압수하여 국가가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시간 속에 배치하는 것이 주요한 처벌이 된다는 것은 시간 규율을 통해 권력이 개인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근대적 시간 의식, 시간 리듬, 시간 규율의 등장 속에는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시간의 역사는 곧 권력의 역사이며, 사회적, 역사적 시간은 사회적, 역사적 권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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