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은 변이의 다양성과 적응도에 따른 생존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개념이며, 사소하지만 점진적인 변이의 누적성,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변화의 개념을 담고 있다. 생명이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변한다면 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고등해진다는 진보의 개념은 생명에게 맞지 않는다. 변화는 다양한 방향으로 일어난다. 생물은 다양한 변이를 만들어 내지만 그 변이를 평가하는 것은 자연이다. 변이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에 적합한 개체와 그렇지 못한 개체로 나뉜다. 전자를 좋은 변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나쁜 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좋은 변이는 자연이라는 위대한 육종가의 손에 선택될 것이고 나쁜 변이는 자연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죽어 자손을 남길 수 없을 것이다. 인간 육종가들의 선택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모든 변이는 우연의 산물임이 틀림없다. 여러 가지 다양한 변이들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의 기준은 없다. 그 가치는 환경에 따라 변한다. 자연은 전지전능한 창조주는 아닐지라도 다양한 변이 중 사소한 우위를 지닌 것들을 선택하는데 무한히 기민하다. 다윈이 생각하는 종 변형은 우연히 발생한 사소한 변이들이 변덕스러운 환경과 자연 속에서 경쟁을 통해 서서히 나타나는 자연선택의 결과였다. 다윈이 생각하는 진화는 다양성 속에서 나타난 우연한 결과일 뿐 어떠한 방향성도 목적성도 없었다. 하지만 당시 종 변형을 주장한 사람들의 생각은 생명은 자기 개선을 위해 노력하며 목적과 의도에 따라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손이 부모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가지로 갈라지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다윈은 산업과 자연의 동일함에서 분지의 원인을 찾아냈다. 그는 자연계를 인간사회보다 훨씬 큰 종의 공장으로 보았다. 여기서 변종이 출현하면 어떻게 될까? 변종은 생태계에서 비어있는 틈을 찾아 새로운 기회를 잡은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변이는 극심한 경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효과적인 탈출구였다. 자연계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비어있는 생태적 지위를 발견함으로써 생존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진화이다. 진화를 추동하는 것은 변이이다. 변이는 결코 목적을 가지고 일어날 수 없다. 변이의 결과에 따른 유불리도 당연히 지속해서 변한다. 진화는 목적적이 아니라 창발적이다. 진화의 진짜 추동력은 효율성이 아니라 다양성이다.
생물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은 다윈 당시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생물체가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투쟁한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진화의 원동력을 창발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성 확보라는 개념에서 바라본 것은 다윈이 처음이었다. 육종가들은 머리색이 약간 검거나 가슴털이 조금 더 복슬복슬한 새끼들을 골라 누적 교배시켜 여러 세대 후에 머리가 까만 비둘기나 가슴에 목도리 같은 털이 있는 변종을 만들어 냈다. 그런 비둘기의 변종을 만들어 낸 것이 육종가의 손이었다면, 자연에서의 변종은 생존 가능성의 상승이라는 자연의 손에 의한 것이라고 다윈은 생각했다. 다윈은 생물체의 변이들이 점진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며 특정 변이들이 누적해서 선택되면서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그것이 결국 종을 구별 짓는 확실한 형질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유토피아를 가정하지 않았다. 경쟁이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경쟁이 사라진 유토피아는 자연에서 존재할 수 없다.
다윈과 진화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오해가 생겨났다. 최대의 오해는 그의 측근에서 생겨났다. 다윈은 중립적인 의미를 지닌 자연선택(natural selecton)이라는 단어 좋아했다. 스펜서는 그 단어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으며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다윈은 처음에는 이 단어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결국 그도 그 단어가 의미 면에서 적절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윈은 개정판에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이 말이 무서운 오해를 불러일으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 : 1864년 허버트 스펜서가 <생물학의 원리 principle of biology)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생존경쟁의 원리를 함축한 용어이다. 다윈은 이 용어를 <종의 기원> 제 5판에서 처음 사용했으며, 다양한 환경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생물체가 특정시대에서 생존할 기회가 높다고 표현했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적자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원래의 뜻이 아니라 “적자만이 살아 남을 가치가 있다”는 의미를 거쳐 “약자는 살아남을 가치가 없다”라는 뜻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역사에 뼈아픈 잘못으로 남는 우생학의 기본 개념으로 연결되었다.
헤켈의 생물발생원칙=반복발생설은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이 반복발생설은 “한 생물의 개체발생은 그 개체가 속한 그룹인 계통이 반복적이며 연속적인 단계를 거친다”고 주장하는 학설이다. 즉 생물체가 어류-파충류-포유류 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헤켈의 반복발생설은 과학적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다시말해 포유류는 어류에서 파충류를 거쳐 진화한 것이 아니다. 지구에서 생물이 등장하는 순서는 어류가 포유류보다 앞서기는 하지만 어류가 진화해서 포유류가 된 것이 아니고, 또한 현생 어류가 초기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현생어류들은 수억년의 세월동안 파충류나 포유류와는 무관하게 진화해 온 별개의 존재이다. 즉 인간과 침팬지는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을 뿐, 침팬지가 먼저 나오고 침팬지가 변해서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뒤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말과 같다.
큰 문제는 반복발생설이 사회에 퍼져 나가면서 일어났다. 헤켈의 반복발생설은 어류보다는 포유류가 더욱 진화한 ‘고등동물’이며 어류는 상대적으로 진화상에서 서열이 낮은 ‘하등동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관점은 생물사이에 위계가 있으며 위계가 낮는 생물들은 미숙하고 열등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반복발생설은 19세기에 유행했던 우생학과 맞물려 인간을 서열화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매우 효율적인 정당화의 도구가 되었다. 즉 인간들 사이에도 위계가 있으며, 더 고등한 존재로 인식되는 백인남성과 이들보다 인종과 성별에서 열등하다고 파악되는 존재들(흑인, 황인종, 여성)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진화적 장벽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흑인여성과 하층계급은 육체적으로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뇌는 반복발생설에 의거해 아직 덜 성장한 백인 사내아이 수준에서 발달을 멈추기 때문에 이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영원히 성인 백인남성에 비해 미숙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골턴은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인 이래즈머스 다윈의 외손자로 다윈에게는 이복 사촌동생이었다. 골턴은 유전의 개념을 다윈보다 더 넓게 잡았다. 인간의 재능과 지능은 동물의 털색이나 뿔의 존재여부처럼 유전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나타나는 무형적인 것들 즉 개인의 지능, 범죄성향, 정신병, 중독성향 등 모든 것이 유전적인 것이며 인간은 지성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주변환경에 비추어 볼 때, 우수한 형질과 열등한 형질(우성과 열성)을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들면 똑똑함과 우둔함은 모두 유전적 산물이며 이 중에서 똑똑함은 우수한 형질이고 우둔함은 열등한 형질일 것이다. 골턴은 인류의 희귀하고 우수한 변종을 들어 확실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들끼리만 신중하고 선택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골턴은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우생학이란 우수한 종을 개량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여기서의 종은 주로 인간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는 그 방법을 포지티브 우생학(pdsitive eugenics-우수한 계층의 출산율을 증가시켜 인간 종의 질적향상을 도모함)과 네거티브 우생학(negative euhenics-인간 종의 퇴화를 막기위해 열등한 유전형질의 확산을 제거하는 것)으로 구분했다.
1904년 영국에서는 우생학 기록사무국(ERO)을 설립, 우생학을 정치개념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30여개 나라에서 우생학적 정치사상들이 대중화 되면서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시술,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대규모 학살 등으로 이어지면서 20세기 인류역사에 큰 상처를 입혔다. 19세기 말 골턴(Francis Galton)이 창시한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은 부적자(unfit)의 출산억제와 적자(fit)의 출산장려를 통해 인류라는 종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자는 학문이었다. 진화론을 배경으로 등장한 우생학은 인간의 유전적 자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완전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유토피아적 기획으로 20세기 중반까지 각국의 인구정책, 공중보건, 복지정책에 영향력을 미쳤다.
1933년 ‘유전병 자손 예방법’ 제정으로 약 40만명이 강제 불임수술의 피해를 입은 독일의 경우가 우생학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예였다. 그러나 소위 열등한 국민을 겨냥한 단종법은 독일에서만 실시된 것이 아니다. 1930년대 미국,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일본 등도 국민보건정책의 일환으로 단종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국가 차원의 우생정책은 파시즘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복지국가의 모델로 여겨져 왔던 스웨덴에서도 1950년대까지 정신장애자에게 반강제적 불임수술을 실시했다는 사실은 복지국가의 이상 또한 우생학의 기획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말해준다.
우생학은 식민지조선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조선의 우생학은 민족개선학 인종개선학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진화론과 함께 일본에서 수입되었다. 식민지조선에서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은 실력양성론과 결합된다.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에서 민족갱생과 인종 개조의 방법으로서 유전에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부터는 우생학을 주제로 한 대중강연이 유행하는데 이는 우생학이 민족적 육체개조운동의 논리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민족육체개조운동은 빈민, 범죄자, 아편쟁이, 유전병환자 등 내부의 타자를 열등한 자로 구획하고 건강의 부족을 조선민족 쇠퇴의 원인 둥 하나로 지목함으로써 체격향상을 위해 위생, 질병예방, 영양개선, 체육장례 등의 실천을 촉구했다.
뒤이어 1933년 윤치호, 여운형, 주요한, 김성수, 이광수 등 85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계몽단체 조선우생협회의 결성은 이러한 우생학의 대중화 양상을 보여준다. 이 협회가 발행한 잡지 <우생>에는 국제 우생운동에 대한 양상, 화류병의 위험,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 산아제한, 결혼과 출산에 관한 조언 등이 다뤄지고 있다. 조선우생협회는 강연회와 좌담회 개최, 아동보건과 결핵의학 상담 등을 주요 활동으로 삼았다. 또한 식민지 당국에 의한 폭력적 열성인자 제거 조처는 단종정책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한센병 보건정책에 의해 소록도에서 강제불임이 실시됐고, 1936년부터 남성환자의 단종을 조건으로 결혼한 부부의 수는 1941년 840쌍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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