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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주요 이슈

현대 한국사 연구 동향

by 영동신사 202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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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년간 한국 사학은 이념사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식민주의 사학의 극복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민족주의 사학일 수밖에 없었다. 식민주의 사학이 역사와 한국 역사 자체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반식민주의 사학으로서의 현대 민족주의 사학 역시 그러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현대 민족주의 사학은 해방 이후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국가적 민족주의에 포섭되면서 탈역사화되기도 하였다. 물론 현대 민족주의 사학은 반식민주의 사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한국 사상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에 대두한 민중 사학은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역사학계에는 새로운 변화 양상들이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사와 한국 사학은 역사학자들만의 소유 대상이었다. 그것은 넓게 보아 민중 사학을 포함해서 기성 사회구조의 상부구조 영역 안에 있었고, 지배적 상부구조에 순응하여 안주하거나 또는 거부하든 간에 지배구조의 담론 안에 갇혀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지배구조의 상부구조가 몸소 역사를 말하고 실천하는 대중과 민중들에 의해서 깨지고, 어쩌면 지난 역사의 진실을 감추고 호도하는 데 그 존재 가치를 지녀왔던 한국 사학이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또한 이른바 과거 청산 국면 속에서 역사는 시간성을 잃어버리고, 곧 현재의 일부가 되면서 기존의 역사와 역사학의 개념도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사를 연구하고 서술하는 주체, 즉 연구자와 연구, 인식 대상으로서의 현실 역사 속의 행위 주체들과 그들의 사상, 생각, 활동 공간들, 말하자면 연구 대상들, 그리고 서술과 기술의 형식들에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역사를 연구하고 기술하는 주체들이 다양해졌다. 그들은 대학 등에서 역사학 과정을 이수한 전통적인 역사학자들 외에 다양한 계층의 출신들이었고 사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도 다양하였다. 그들은 개인으로서 혹은 집단으로서 나타났다. 특히 지난 역사 속에서 억압자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렸던 자들, 반대로 억압 속에서 숨죽이고 있었던 자들 모두가 이제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또한 역사 속에서의 중앙, 즉 수도권의 역사와 수도권 역사학자 중심에서 지역의 역사와 지역사 연구자들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역사와 역사학의 대중화, 지역화가 이루어지면서 지역사 연구자 혹은 단체들이 나타났다. 더불어 개방화와 함께 해외 한국사 연구자들이 또 한 축을 이루어 가는 새로운 현상도 등장하였다. 이처럼 역사와 역사학자의 주체에서 탈이념화, 대중화, 지역화가 이루어지면서 역사의 기술 혹은 서술 형식도 다양해졌다. 즉 역사의 대중화와 맞물려서 모든 사람에게 역사를 전달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 계발되기 시작하였다.

전문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전문 학술지 외에 역사비평지, 역사 강좌, 각종 사실 문서와 기록들이 등장했다. 특히 여러 연구단체의 공동연구와 저술들, 그들의 공동 심포지엄과 토론회, 대중 강좌 등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보다 대중적인 것으로는 개인의 전기와 체험기, 과거 들추기 기록들, 르포적 기록들, 역사 소설, 만화 그리고 대중매체를 통한 역사극 등이 유행하였다. 대중들의 탈정치화와 더불어 문화와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또한 개인과 가문, 개인 삶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전통문화와 유산을 알리는 글, 예를 들면 문화유산 답사기 등이 문화 산업화에 편승해서 유행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형식들은 말하기 혹은 이야기 수준부터 전문 연구자들의 논문에서 보이는 기술 혹은 서술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 역사학에서 가장 큰 변화는 인식과 기술 대상 즉 주체의 변화일 것이다. 우선 시대사별로 보면 1980년대에 활발했던 근현대사 연구가 퇴조하고 대신 근대 이전의 시대사 연구가 다시 주목받았다. 한편 분야사와 주제별로 보면, 1980년대 진보적 역사학계의 경제사, 사회사, 사회 운동사 연구가 다소 주춤거리고 대신 사상사, 문화사 연구가 부상하였다. 즉 연구의 초점이 정치, 경제, 사회로부터 사상과 문화, 일상생활 등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모든 분야와 영역, 주체들이 새로운 연구 테마로 떠오르고 그에 따라 더욱 많은 사료가 발굴되고 이미 인용되었던 사료들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경제사와 사회사에서는 이전에 수집·이용되었던 통계 자료들의 계량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문화사 연구의 움직임이다. 보수적 역사학자들은 일상생활과 일상 경험의 조건으로 이해되는 문화를 대상으로 연구함으로써 문화사 혹은 일상사가 새로운 영역으로 등장하였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보수 사학계는 사회의 보수화에 편승하여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서 민중사학계를 압박하였다. 새로운 역사학이 하나의 학풍으로 형성되어 세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세대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볼 때, 1980년대 후반은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해방 이래 우리 역사의 현실적 과제는 아직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역사의 발전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과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볼 때, 민중 사학의 수립과 발전은 계속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비서구 사회가 포스트모더니즘 사학을 수용할 때, 여러 가지 문제점도 함께 지적되었다. 즉 공통으로 지적되는 점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럽 사회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 따라서 한국이 처한 현재의 분단, 미완의 근대, 과거사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그 인식론과 방법론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역사학자들의 대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학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즉 어떤 통합된 틀 없이 지나치게 다양성을 강조하거나 조건 없이 해체하려는 경향, 편향된 문화 위주의 역사 서술이 가져올 또 다른 정치·사회적 측면의 배제 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학은 근대 역사학으로 출발할 때부터 반과학적인 식민주의 사학과 투쟁하였다. 현대 민족주의 사학은 식민주의 사학의 망령과 싸웠다. 그리고 민중 사학은 현대 민족주의 사학(자유민주주의 사학근대 경제사학·포스트모더니즘 사학의 반대편에 섰다. 그러나 이 부정의 부정 과정으로 과학적 역사학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과학을 아무리 반대로 구부린다고 하여도 과학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애초의 이론적 문제의식의 틀이 이데올로기이고 허구였기 때문이다. 역사학 역시 사회에 관한 하나의 지식을 생산할 뿐이다. 과학적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의식의 틀이 과학이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문제의식 틀이 과거와 단절하고 과학성을 확보하는 것은 과거와 단절하는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는 비틀어지고 조작된 근현대사와 단절하는 지점이었고, 과학 생성의 태반이었다. 1980년대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지금, 현실의 모순과 그 모순의 운동을 인식할 때 과학적 역사학은 비로소 확립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현실인 과거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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