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는 세상의 변화에 한편으로 민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매우 둔감하다. 대중 속에 살붙여 그들을 소비자로 삼아 살아가는 대중가요의 속성상 세상의 변화 및 대중들의 취향과 욕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대중가요는 죽은 목숨이다. 그런 점에서 대중가요는 시대에 민감한 소설보다도 어떤 측면에서는 그 변화를 더 재빠르게 포착한다. 다른 한편 대중가요는 시대 변화를 조망하거나 근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먹고사는 이야기, 사회적인 이야기들은 기가 막히게 제거되고, 남녀 간의 사랑과 사적인 이야기들로만 채워진다. 검열에서 살아남으면서도 대중에게 잘 팔려야 하니까. 대중가요는 세상의 변화를 날렵하게 타고 날아 신제품 라면처럼 대중의 혀 위에 몸을 얹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가요의 창작자들이 작품을 통해서 세상에 대해 하고자 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살펴보려는 노력은 종종 실패한다. 그렇게 살펴볼 만한 것은 몇몇 싱어송라이터에 불과하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창작자가 힘주어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중가요에 드러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다. 그래서 소재, 표현을 중심으로 대중가요사를 따라가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역사가 발전한다고 해서 그 속에서 모든 인간이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역사 발전이 급격히 이루어지는 시기에 그 속의 사람들은 급격히 바뀌는 세상을 감당하느라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하물며 근대로의 이행을 곧 발전이라고 단언할 수 없었던 우리의 20세기 초는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외세의 강압에 의한 식민지적 근대의 경험 때문에 당시의 지식인들은 뚜렷한 근대적 현상들을 무조건 두 손 들고 환영할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자유연애를 주창하면서도 그 자유연애가 곧 순종적인 본처에 대한 배신으로 이어진다는 데에 대한 자책감과 찜찜함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기차와 철도는 근대를 대표하는 사물이다. 기차는 농업과 어업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작은 마을들을 단일한 경제권으로 묶어내었고, 이로써 중세적인 농촌공동체의 질서를 넘어선 국민국가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고 철도가 끝난 곳에는 바다가 열려 있었다. 국가와 국가를 이어주는 것은 바다이며 항구였다. 유럽인들은 바다에 나가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하였고, 아직 근대국가에 이르지 못한 나라들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따라서 기차와 바다는 산업혁명과 근대적 교역을 의미하는 강인하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주게 된다.
우리 근대사에서는 어땠을까? 과연 우리도 기차와 바다를 그렇게 진취적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우리의 철도는 일본의 강압에 의해 놓였고, 그것은 곧 굴욕적인 국권 침탈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바다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로부터 고통받았고, 그 항구로 쌀이 실려 나갔으며 조선 사람들은 대일본제국의 군인과 노동자가 되어 배를 타고 나갔다. 기차와 바다는 결코 희망의 사물이 아니었다. 그런 정황을 보면, 기차에 관한 노래로 가장 오래된 최남선의 창가 경부철도가(1908년)는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기쁨에 찬 철도로 노래하는 점이 오히려 우리를 찜찜하게 한다. 이 노래는 최초의 창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최초에도 그 근원과 바탕은 있는 법이다. 우리 안에 토대가 없는, 갑자기 완성된 형태의 최초로 무엇이 생겼다는 것은 외국에서 완성품을 수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창가는 일본 창가를 수입한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철도가 문명개화 하는 세상을 여는 사물로 드러난다. 문명 개화한 세상이란 사해동포주의가 관철되는 세상이라는 인식이 뚜렷하다. 문명개화가 외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거부감은 거의 없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철도와 기차, 부산항의 무역선과 항만 운영이 모두 일본인의 손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통탄하고서 우리가 힘을 키워 되찾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작품 전체는 철도라는 개화한 문명이 들어 온 것에 대한 신기함과 칭송에 치우쳐 있으며 통분의 정도는 매우 약하다. 당시 1908년이면 통감부가 설치되어 주권의 대부분을 상실했던 시기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의 태도가 다분히 친외세적 문명개화라고 충분히 이야기할 만하다. 이런 노래를 보아서도 일제 말기 최남선의 친일행각은 일본의 강요에 의해 서라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철도의 끝은 바다이며 바다 건너는 일본이다.
대중가요의 보수성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결국 일제 말기 일본의 대륙침략 정책에 적극 동조하였다. 193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바다가 갑자기 희망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건전 가요풍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바다의 교향시, 감격시대 등이 대표적인 노래다. 눈물과 탄식의 트로트 일색이었던 풍토에서, 전쟁 색이 짙어지는 1939년에 갑자기 이런 노래가 등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일제 말기에 희망봉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노래들이 풍기는 진취성의 정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분명 노골적인 친일가요로 넘어가기 직전의 모습이다. 이것을 보면, 1940년대에 지은 현제명 작곡의 바다로 가자도 충분히 친일가요의 혐의가 있다. 1940년대를 넘어서면 만포선 길손, 만포선 천 리 길, 향수 열차 등 만주 대륙을 달리는 철도를 노래한다. 노골적인 친일 주장을 하는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지만, 만주와 대륙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일제의 대륙침략 정책에 부응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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